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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스위스 취리히 ETH와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by Amy3773 2023.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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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출장으로 ETH를 다녀왔습니다. ETH의 청소년 과학프로그램이 평가가 우수한것을 보고 현재 진행되는 프로그램들 위주로 탐방하였습니다. 그때도 우와.... 멋지다... 이런 프로그램에 한국청소년들이 많이 참여하면 좋겠다.. 했었습니다. 

 

여행액티비티북 취리히팝업과 ETH

 

 

 

ETH는 청소년 과학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취리히 주변의 중학생 및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정보과학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를 다룹니다. 수학과 과학을 이용한 예술, 생물학과 건강, 물리학과 컴퓨터과학 등이 있습니다. 또한 프로그램은 강의와 실험, 그리고 프로젝트와 대화 등을 이용하여 학생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결책을 발견하게끔 돕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취리히에서는 유명하며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ETH는 청소년들에게 과학과 수학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대학과 교육기관 간의 연계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https://mavt.ethz.ch/news-and-events/events/projects-for-children-young-people.html

 

Projects for children and te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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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vt.ethz.ch


 

자, 오늘은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고 아직도 감동이 사라지질 않아서.. 유럽의 학교들 중 오펜하이머와 연관된 학교를 몇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1. 캠브리지 대학교: 1925년에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오펜하이머의 논문은 "On the Quantum Theory of Radiation"이었습니다. 이 논문은 퀀텀 역학에 대한 일반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후 일대일 타격(Neutron diffraction)에서 중요한 발견을 하였습니다.

 

2. 괴팅겐 대학교: 괴팅겐 대학에서 일을 하며,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이론 팅크(Turnkey theory)이라는 물리학 이론을 개발하였습니다. 이 이론은 원자핵 물리학 전 분야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3. ETH 취리히: 오펜하이머는 ETH 취리히에서 1928년부터 1947년에 이르는 19년간 교수로 일했습니다.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현대 물리학의 이론 및 응용 분야에 많은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특히, 그는 핵물리학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을 보였습니다. 이 기술은 원자핵 물리학 연구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과 개발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의 발견과 연구는 맨하탄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Oppenheimer-Phillips process"와 같은 몇 가지 중요한 물리학 이론도 이곳에서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12년 ETH 취리히로 전임하여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이 학교에서 그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 "유전자의 역사"라는 두 가지 주제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그는 교수로서 핵물리학 분야에서 많은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많은 핵물리학자들을 지도하였습니다. 1930년대 초반, 오펜하이머는 이전에 괴팅겐 대학 교수였던 막스 본(Max Born)와 함께 핵 물리학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외부 조제에 의한 원자핵 분열을 연구했고, 이후에 킬러 원자(Killer atoms)라고도 불리는 core oscillator model을 개발하게 됩니다. 하지만 1933년, 나치당의 선전포고와 함께 막스 본은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 영국, 스웨덴 등으로 유랑생활을 시작합니다. 이와 달리 오펜하이머는 미국에서 교육 및 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계획하며, 아인슈타인과의 교류를 계속하였습니다. 오펜하이머은 1937년에 미국을 방문할 때 아인슈타인을 만나, 그와 함께 원자 폭탄의 가능성 등 다양한 논의를 나눈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맨해튼 프로젝트의 과학자들로 오펜하이머을 추천하며, 오펜하이머에게 맨해튼 프로젝트 수장의 역할을 맡기게 됩니다. 오펜하이머는 ETH 취리히에서 교수로서 근무하면서 많은 연구와 지도를 하였으며, 아인슈타인과도 교류하였습니다. 이 교류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참여로 이어졌고,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과학자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1912년~1914년에 ETH 취리히 대학교에서 이론 물리학 교수로 임명되어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 그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 "유전자의 역사"와 같은 주제에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 그의 상대성 이론과 현대 물리학에 대한 기여는 크며, 이는 교수로서 활동하는 동안 더욱 발전되었습니다.
  • 로버트 오펜하이머:
    • 1928년부터 1947년까지 ETH 취리히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 그는 핵물리학과 양자역학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하며 핵물리학 분야에서 혁신적인 연구를 이끌었습니다.
    • 그의 오펜하이머 방정식과 양자역학의 개념은 현대 물리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교류는 맨하탄 프로젝트의 개발과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막대한 위협을 받고 있었으며, 맨하탄 프로젝트는 원자폭탄의 연구 및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이러한 프로젝트에 핵물리학자로서 참여하게 되었고, 그는 이 프로젝트에서 핵물리학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여하던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이 인류에게 가질 수 있는 파괴적인 영향에 대한 논쟁과 고민을 한 바 있습니다.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서신을 주고받기도 하였습니다. 1945년, 맨하탄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원자폭탄을 만들어냅니다. 이를 계기로 오펜하이머은 '파이로테크닉(Pyyotechnics)'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광폭화를 시작합니다.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오펜하이머에게 "인간의 슬픔"이라는 답장을 보내며 그의 대답없는 비판을 전하게 됩니다. 따라서,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은 맨하탄 프로젝트를 통해 교류하고, 원자폭탄이 인류에게 가질 수 있는 파괴적인 영향과 미래를 담담하게 논의하곤 했습니다.

 

 오펜하이머의 유럽 학교에서의 활동, 저서, 논문

- 1925년,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취득: "On the Quantum Theory of Radiation" 논문

- 1926년 - 1927년, 케이메리크 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

- 1927년 - 1928년, 괴팅겐 대학교 이론물리학 연구원으로 근무

- 1928년 - 1947년, ETH 취리히 교수

- 1931년, "The Principle of Indistinguishability" 논문

- 1935년, "On the Theory of Virtual States" 논문

- 1937년, 미국 방문 중 아인슈타인과 면담 - 1946년, "Nuclear Physics in the United States" 논문

 

오, 영화 오펜하이머의  다큐도 있네요. 어여 보러갑니다. 


취리히 ETH사진 찍었던 자료 찾다가 덤으로 동료에게 받았던 따뜻한 질문지를 발견했습니다. 
찬찬히 마음으로 답해보시길요~